일제 강점기시대인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땅을 잃고 고향을 떠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때 "경제적인 자립없이는 정치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전국 각지에서 경제적 단결을 목표로 협동조합이 생겨난다. 1932년 동아일보 조사결과 전국 협동조합 수 97개, 조합원 수 4만여명, 출자금 42만원에 달했다.
당시 주요 협동조합으로 원산소비조합을 꼽을 수 있다. 원산소비조합은 지역 23개 노동조합과 협력, 2천 2백여명 조합원이 낸 출자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더해 총 8천원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조합원 1인당 출자금은 20원(10회 분할납입), 당시 한달 평균 급여는 22원 정도였다. 원산소비조합은 조합원에게 20~40% 싼 값으로 필수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1937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협동조합 폐쇄명령을 내리고, 협동조합 지도자들은 구속, 자산은 몰수했다.
일제시대 협동조합
일제 강점기시대인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땅을 잃고 고향을 떠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때 "경제적인 자립없이는 정치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전국 각지에서 경제적 단결을 목표로 협동조합이 생겨난다. 1932년 동아일보 조사결과 전국 협동조합 수 97개, 조합원 수 4만여명, 출자금 42만원에 달했다.
당시 주요 협동조합으로 원산소비조합을 꼽을 수 있다. 원산소비조합은 지역 23개 노동조합과 협력, 2천 2백여명 조합원이 낸 출자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더해 총 8천원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조합원 1인당 출자금은 20원(10회 분할납입), 당시 한달 평균 급여는 22원 정도였다. 원산소비조합은 조합원에게 20~40% 싼 값으로 필수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1937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협동조합 폐쇄명령을 내리고, 협동조합 지도자들은 구속, 자산은 몰수했다.
참고자료
<협동조합의 성공사례> /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http://durl.kr/72tudn
<옛날신문으로 읽는 우리협동조합이야기> / 협동조합공작소, http://durl.kr/72tu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