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분산 에너지 시스템은 분권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관리자
2022-06-09


[조천호의 파란하늘]
2026년 재생에너지 > 핵·화력에너지 전망
전력망 구조 중앙집중→분산형 전환해야


화석에너지의 종말은 화석연료의 고갈에 의해서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태운 결과인 기후위기에 의해 일어난다. 기후위기가 촉발한 에너지 전환은 정치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정치는 누가 에너지를 통제하는지, 누구를 위해 에너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서는 전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2019년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3%, 2050년까지 84%를 감소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IPCC ‘지구온난화 1.5도’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 전 세계 전력의 70~85%를 재생에너지가 공급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핵발전도 이산화탄소 감축 선택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그렇지만 IPCC 6차 보고서에서 현 수준의 기술로 2030년까지 핵발전은 태양광·풍력 발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감축 크기는 9분의 1 정도이며 비용이 훨씬 비싸다고 분석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빠른 기술혁신과 대량생산이 있었던 분야는 원자로가 아니라, 태양광, 풍력과 전력 저장에 필요한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세계 태양광·풍력 10% 넘어서


태양광과 풍력은 2015년 전 세계 전력의 4.6%에서 2021년 10%를 넘어섰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풍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이 핵발전량에 도달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에 재생에너지가 생산하는 전력이 화력발전과 핵발전을 합한 것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은 2021년 4.9%에 불과했다.


민간 기업은 자기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며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핵발전 이점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 그 비용과 위험을 무시하였다. 그 결과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공적 자금으로 핵발전소가 지어졌다. 이제 핵발전은 서구 주류 시장에서 퇴조하고 있다. 그래도 전 세계 핵발전량이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서유럽과 일본에서 줄어든 만큼 주로 중국에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핵발전 확대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한다. 중국이 가려는 길을 새 정부도 가려고 한다. 강력한 이해당사자인 핵발전계가 전문성을 내세워 전 세계 에너지 기술 상황과 전망을 왜곡시키고 이와 결탁한 정치와 언론이 이를 증폭한다. 핵발전소를 만드는 일에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 에너지 전략은 핵발전의 세부적인 기술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에너지 기술 흐름과 이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결정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면 자신의 전문 분야 권위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전기는 그것을 배분하는 전력망과 분리될 수 없다. 기존의 핵과 화력 발전의 전력망은 중앙집중적인 독점 체계가 필요하다. 독점은 반드시 그것을 통한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핵과 화력으로 만들어진 전력은 소외된 지역에서 생산되어 도시와 산업 지역에서 소비한다. 한쪽은 피해를 보는 반면 다른 한쪽은 혜택을 독점한다. 핵·화력발전소는 지역에 강압적으로 세워져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삶의 조건을 파괴한다. 결국 중앙집중 발전은 민주적 풀뿌리 저항으로 긴장과 분쟁 상태를 만든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에 의존하여 전력을 생산한다. 화석연료와 달리 재생할 수 있어 어디서나 무한하고 무상이다. 하지만, 태양은 항상 빛나지 않고 바람은 항상 불지 않는다. 우리나라 핵발전계는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 불확실성, 전력망 운영과 자연조건 등의 한계와 어려움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것은 제약조건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일 뿐이다. 재생에너지의 효율, 관리기술과 저장방법이 혁신되고 있어 신뢰할 수 있고 깨끗한 전력체계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다.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로비 모니터에 전력수급현황이 띄워져 있다. 이날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월평균 최대전력은 7만9천797MW(메가와트)로 전년 동월(7만7천620MW)보다 2.8% 증가했다. 이는 2005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시작 이래 1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연합뉴스


양방향 수요관리·생산-소비 불평등 해소 필요


재생에너지는 자연을 이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는 낮고 그 분포는 넓다. 하지만 이런 비효율성과 제약이 오히려 이점이 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가변성과 분산성이라는 특징에 걸맞은 전력망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만 필요한 게 아니라 기존 전력망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전력망은 햇빛과 바람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긴밀한 수많은 분산 연결망으로 구성된다.


핵·화력 에너지는 한 방향 공급위주 체제지만 재생에너지는 양방향 수요관리 체제이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은 에너지를 재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산하여 생산하는 만큼만 사용하는 데 있다. 그리고 전기 사용료는 재생에너지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싸야 하며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지역에서 비싸야 한다. 전기를 얼마만큼 사용하느냐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금이 달라져야 한다. 이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게 한다.


분산망은 중앙집중망과는 달리 극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체 전력시스템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고, 복구를 신속하게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분산망의 특성상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이 가깝다 보니 전력 공급 효율이 높고 송배전 비용이 적게 드는 이점이 있다. ᅠ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의 현실은 지역에 발전설비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설치가 단절된 소통으로 이루어졌고 그 지역주민들에게 재생에너지로 인한 편익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지역주민에 최우선 혜택을


재생에너지는 지역 자립과 주민 자치를 지원한다. 지역 공동체는 에너지를 선택하고 그 인프라를 운영하여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지역의 자연조건으로 만들었으므로 지역주민에게 최우선으로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확장이 가속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중앙정부가 수많은 소규모 재생발전설비와 분산망 모두를 관리할 수 없다. 기존 에너지 정책 결정에서 중앙정부가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면 분산 에너지 체제에서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커진다. 지방정부는 주민에게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설득하고 환경과 생태에 미치는 영향과 지역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이익의 분배는 지방 정부가 그 지역의 전력가격을 낮춘다거나 기본소득 제공 등을 통해 창의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에너지 전환은 목재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그리고 석유에서 재생에너지로 와 같은 연료원의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 오늘날 에너지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이며 다른 모든 상품 생산 고리의 핵심과 가장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대 자원이다. 그러므로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구축된 다양한 형태의 사회, 경제, 정치 변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사회구성원 모두 전력시스템 참여 이익 공유해야


중앙집중 전력 체계는 중앙집권 정치 체계와 맞닿아 있다. 중앙집중 전력망에서 시민은 에너지가 어떻게 생산되어 분배되는지에 대해 알 수 없다. 시민은 위계 시스템의 말단 소비자일 뿐이다. 반면, 분산 전력망에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재생에너지에 참여하고 그 편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시민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 지역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이 강화된다.


맥길대 버크(Burke)와 노스이스턴대 스티븐스(Stephens)는 <에너지 연구와 사회과학>(Energy Research & Social Science)에 실린 논문에서 재생에너지와 이와 연계된 분산 전력망이 분권된 민주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밝혔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적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으며 진행되는 자기조직화 과정이므로 에너지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민주주의는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과 더욱 민주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연결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탈탄소화는 기존 지배적인 에너지 전력 시스템에 맞서 이를 바꿔야 하는 정치 투쟁이다.


에너지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2015년에 채택된 유엔 지속가능한 개발 7번째 목표(SDG 7)인 ‘에너지의 친환경적 생산과 소비’에서는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에너지 시스템의 목적은 자본을 축적하여 경제 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는 소규모로 분산되어 독점할 수 없으므로 희소성을 만들기가 어렵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그만큼 한정된 연료 자원을 놓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를 사유재에서 공공재로, 에너지 기반 시설을 자산에서 공공사업 또는 공동 인프라로, 그리고 지역 주민을 에너지 소비자에서 에너지 시민으로 전환한다. 이 공공성을 통해 인간과 자연 모두의 풍요를 만들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과학기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방식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빠르게 혁신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은 의지의 문제이며 이는 정치를 통해 실현된다.


분산 에너지 시스템은 분권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소수가 지배하는 에너지 결정권을 무너뜨려 기후위기를 막고 우리 공동체를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협동하도록 진화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성의 강화가 그 위험을 극복하고 새 세상을 향해 진화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참고문헌M.J. Burke and Jennie C. Stephens, Political power and renewable energy futures: a critical review, Energy Res. Soc. Sci., (Jan. 2018) https://doi.org/10.1016/j.erss.2017.10.018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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